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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누린인사 작성일26-09-11 04:36 조회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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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39 정상으로 가는 마지막 구간, 이 구간을 다섯 피치로 나누어 등반했다. 암벽, 빙벽, 설벽이 섞인 지형이라 믹스클라이밍 능력이 필요했다.
"코사르강(6,041m) 등정의 기쁨은 딱 오늘 밤까지. 내일부터는 다시 등반 모드다."
첫 번째 목표 달성에 들떴던 것도 잠시, 조벽래 대장님의 단호한 한마디에 대원들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 우리 원정이 아직 끝난 게 아니었지?'
1년간 이를 꽉 깨물고 버텨온 훈련은 결국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나. 가장 큰 목표인 미등정봉 'PK39'가 아직 험상궂은 모습으로 버티고 있는데 긴장 풀린 모습을 보이다니… 부끄러움에 두 볼이 화끈거렸다.
파키스탄 2,200m 고지대 도시인 스카르두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이틀 동안 등반 계획을 숙지하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며 싱숭생숭한 밤을 보냈다. 베이스캠프로 출발이다.
베이스캠프에서 바라본 아이스폴 지대와 늑대바위.
PK39는 파키스탄 카라코람 히말라야의 탈레계곡에 위치한 산이다. 베이스캠프(4,600m)에서 PK39를 향한 루트에는 거대한 아이스폴 지대가 있었다. 사진으로만 봤던 PK39를 처음 보았다. 거대한 피아노 건반처럼 서늘한 위압감과 냉기를 내뿜는 아이스폴, 바로 오른쪽에는 가장 어려운 구간으로 손꼽히는 500m의 직벽 늑대바위가 있었다.
실제로 마주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동안 기후가 변한 탓인지 아이스폴 지대는 사진과 달리 무너진 상태였다. 우리의 등반 루트도 세락(능선의 눈처마)이 무너지거나 눈사태가 덮치는 아찔한 상황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밀려왔다.
등반하기 적합한 날씨를 기다렸다. 늑대바위에 고정 로프를 설치하고 무거운 장비를 늑대바위 정상으로 여러 번에 걸쳐 옮기는 수송 작업으로 3일을 보냈다. 늑대바위는 실제로 붙어보니 난이도 5.6~5.9 정도로 어렵지 않은 암벽이었다. 하지만 바위 질이 워낙 푸석푸석하고 잡는 홀드마다 과자 부스러기처럼 무너져 내려 아찔했다.
잡는 홀드마다 확신을 주지 못하고 "나 언제든 무너질 수 있어. 이래도 나를 믿을 테냐?"라고 조롱하는 듯했다. 게다가 고정 확보물이 없기에, 한국에서 가져간 하켄과 캠, 너트, 슬링 등으로 확보지.을 만들며 등반해야 했다. 불규칙한 바위 틈새에 여러 장비를 설치해 이퀄라이징(하중 분산)을 거쳐 믿을 만한 확보 지.을 구축하는 과정은, 그동안 수없이 반복했던 훈련의 성과를 실전에서 증명하는 뼈저린 대목이었다.
안자일렌을 하고 제1설원을 넘어 캠프1으로 가는 길. 크레바스가 많은 곳이라 극도로 조심하며 걸었다,
릴황금성
눈물 나는 캠프1 가는 길
스카르두에서 대기하던 대원들이 돌아오고, 앞으로 4~5일간 등반하기에 적당한 날씨가 이어질 것이라는 일기예보였다. 캠프1으로의 진출 날짜가 정해졌다.
7월 17일 오전 3시 30분. 모든 짐을 짊어지고 캠프1으로 출발하려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져 다잡았던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같은 학교 동생이자 가장 아끼는 원정대 동료인 성현이가 건강 악화로 스카르두로 복귀하게 되었다는 소식, 그리고 원정대의 에이스이자 나와 매일 밤늦게까지 등반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원정에 진심이었던 유진 선배가 컨디션 난조로 정상 공격에서 빠지게 되었다는 소식이다.
늑대바위를 등반할 때의 필자. 고도감이 상당하고 암질이 좋지 않아 위험했다.
정상을 향해 첫 발을 떼는 날, 가장 친한 동생과 제일 신뢰하는 동료와 함께할 수 없다는 생각에 걷는 내내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이 이 순간을 위해 지난 몇 개월간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고, 진심으로 임했는지 알기에 슬퍼져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눈밭에 묻어두고 다시 숨을 고르며 등반에 집중했다. 오늘 나의 역할은 가장 선두에서 그동안 설치해 놓은 고정 로프를 사용해 늑대바위를 빠르게 돌파하는 것. 첫날 10시간 넘게 걸렸던 늑대바위 등반이 이제는 익숙해진 탓인지 2시간 반 만에 늑대바위 정상부에 닿았다.
그동안 올려둔 등반장비와 야영장비를 배낭이 터질 듯한 한계까지 꾸역꾸역 패킹하고 왼편으로 100m 정도 트래버스를 했다. 그야말로 비현실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불규칙하게 쩍쩍 입을 벌린 거대한 크레바스 지대에 소름이 돋았다. 광활한 제1설원, 그리고 우리가 캠프2로 진출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하는 거대한 제1설벽이 한눈에 들었다.
제2설벽을 등반 중인 정상 공격팀, 벽의 각도가 상당해서 어려웠다. 등반 길이도 길어 체력소모가 심했다.
코사르강은 연습이고, 여기부터 진짜 험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긴장하지 말자'고 속으로 되뇌었다. 우리를 잡아먹을 듯한 깊이의 크레바스를 보며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억눌렀다. 안자일렌(안전벨트를 로프로 연결하는 방식) 등반을 준비했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수십 번씩 키위 코일링과 알파인 버터플라이 매듭을 연습했던 기억이 스쳤다. 실소가 터져 나왔고, 경직됐던 긴장이 조금은 풀렸다.
크레바스를 요리조리 피해 캠프1으로 향하는 과정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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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누르는 배낭 무게와 하얀 눈에 반사되어 쏟아지는 지옥 같은 햇볕이 무척 따가워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제발 이 끔찍한 시간이 빨리 지나가게 해달라'고 속으로 기도했다. 그 감각만 아직 선명하다.
캠프1에 도착해 제1설벽을 올려다봤다. 절망적인 한숨이 튀어나왔다. 베이스캠프에서 등반 루트에 대한 회의할 때만 해도 "제2설벽보다는 경사도가 낮고 빙·설질이 균일해 충분히 선등해 볼 만할 것"이라는 조 대장님의 말에 나는 호기롭게 선등하고 싶었다.
제2설벽을 넘어서자 나타난 위성봉과 정상부. 오른쪽 최상단이 PK39의 진짜 정상이다.
하지만 막상 코앞에서 마주한 300m의 설벽은 거의 수직처럼 보였다. 대자연의 압도적인 스케일 앞에 한없이 무력한 작은 꼬마가 된 느낌이었다. '아직 이것보다 경사가 훨씬 더 세고 까다로운 400m 두 번째 설벽이 버티고 있는데, 내가 갈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머릿속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고정 로프에 등강기를 걸고 앞사람만 따라가는 방식과 알파인 스타일의 등반은 다르다. '내가 팀에 보탬이 될 수 있을까'하는 근본적인 불안감은 훈련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명쾌하게 씻겨 내려간 적 없었다. 마음 고생이 독이 된 탓일까. 캠프1에 도착하자 갑작스레 몸 상태가 나빠졌다. 결국 위액이 나올 때까지 토하고 말았다.
"아! 이번 원정은 진짜 망했구나"라고 중얼거리며 절망감에 휩싸여 침낭 속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같은 텐트를 쓰는 형준이와 창엽이 형이 툭 던지듯 담백하게 말했다.
캠프2에서 촬영한 정상 등정 사진. 자세히 보면 정상에 오른 7명의 대원들이 명확하게 보인다.
"당연히 정상 가야지. 이번에 올라가면 우리 셋 다 두 개 봉우리 등정하는 거잖아. 무조건 가야지?"
결국 알파인 등반은 시작도 팀이고 끝도 팀이다. 팀이 없으면 나도 없고, 정상도 없는 것이다. 최악의 컨디션 속에서도 서로 물을 끓여 주고, 약을 챙겨 주며 묵묵히 정상을 향해 전진하는 우리의 끈끈한 팀워크를 다시금 곱씹으며, '제발 내일은 온전히 팀에 힘이 될 수 있는 몸 상태로 눈뜨게 해달라'고 간절히 바랐다.
15시간의 정상 공격 그리고 마침내
다음날, 다행히 한결 나아진 컨디션으로 악명 높은 제1설벽을 뚫고 캠프2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는 정상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보였고, 아슬아슬하게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거대한 세락과 우리를 가로막은 최종 보스 '제2설벽'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정말 내가 저런 수직의 설벽을 오를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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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조차 스스로 의심스러울 지경이었지만, 더 이상 뒤로 물러서서 어물쩍거리는 것은 지긋지긋했다. 이제 내 머릿속에는 그동안 피땀 흘려 해왔던 훈련, 내 목숨을 쥔 동료들, 그리고 정상뿐이라는 마인드로 마지막 등반에 섰다.
캠프2에서 대장님이 대원들을 모아 최종 정상 공격 루트를 브리핑했다. 제2설벽을 돌파한 뒤 위성봉을 믹스 클라이밍으로 넘어서고, 아직 누구도 밟아본 적 없는 칼날 같은 커니스(눈처마) 구간과 정상 직전의 암·빙·설 혼합 지대를 통과해야만 정상에 닿을 수 있었다. 이제는 정말 물러설 곳이 없다. 오직 이 하루를 위해 1년을 훈련했고, 일주일 내내 생고생을 하여 여기 캠프 2까지 왔다. 대망의 마지막 걸음이다.
드디어 밟은 PK39 정상. 뒤로는 K2, 브로드피크, 가셔브롬 등 8,000m급 고산들이 한눈에 보인다.
7월 19일 자정. 결전이다. 재우가 지원 역할로 캠프2에 잔류하고, 7명의 대원이 정상 공격에 나선다. 무거운 하네스를 차고 크램폰을 단단히 조였다. 이상하리만치 컨디션이 좋았다. 알 수 없는 묵직한 자신감이 단전에서부터 차올랐다. 두 번의 시도는 없다.
몇 시간이 걸리든 무조건 오늘 정상에 간다고 생각했다. 대원들의 초반 기세가 좋은 덕에 빠르게 제2설벽을 등반했다. 높이 400m, 경사도 60도의 높은 난이도였지만, 안자일렌으로 서로의 생명을 묶은 채 배운 모든 기술을 사용해 위만 보고 올랐다.
중간중간 경사가 매섭게 솟구치고 발아래로 펼쳐진 아찔한 고도감에 심하게 동요되기도 했지만, 어느새 시야에 들어온 웅장한 K2와 브로드 피크를 바라보며 요동치는 멘털을 다잡았다. 제2설벽을 70% 정도 돌파했을 때, 마침내 최대 고비가 찾아왔다.
아침 해가 들기 시작하자 단단했던 눈 표면(크러스트)이 푹푹 녹아내리며 발이 속절없이 빠지기 시작했다. 바닥난 산소에 대원들의 체력도 뚝뚝 떨어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한계를 어떻게든 넘어서려는 동료들의 처절한 의지가 거친 숨소리에 너무도 명확하게 배어 있었다. 나 역시 결코 포기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수 없었다.
오전 8시 50분. 드디어 제2설벽 위로 올라섰다. 곧이어 조벽래 대장님이 지난 원정에서 아쉬움을 삼키며 돌아서야 했던 바로 그 '위성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에는 장비가 부족했고 미지의 정상으로 가는 루트에 확신이 없어 발길을 돌려야 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우리는 이 순간을 위해 철저한 준비를 했다.
모든 등반이 끝난 뒤 히말라야를 즐기는 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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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동아대23 이재영, 부경대23 나유진 대원.
믹스 클라이밍으로 위성봉을 넘어서자, 다시 생각해도 오금이 저리는 날카로운 피너클 지대와 아슬아슬한 커니스 구간이 나타났다. 이곳을 통과해 정상으로 향하는 마지막 구간은 예상보다 훨씬 길고 이상할 정도로 난이도가 높았다.
시간은 속절없이 지체되었고, 대원들의 체력은 이미 마이너스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누구도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이러다 오늘 정상에 닿지 못하고 돌아서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토록 위험한 산을 왜 오르는가?
바로 그때, 꽉 막힌 숨통을 틔워준 건 오세인 부대장이었다. 노련한 경험으로 거침없이 루트를 선등으로 오르며 이끌었다. 마침내 정상으로의 마지막 활로를 뚫어냈다. 체력이 방전된 상태에서 선등으로 위태롭게 돌파해 낸 마지막 60m 피치는,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경외심이 들 만큼 압도적이고 존경스러운 등반이었다.
오후 3시 20분. 드디어 우리는 아무도 밟지 못한 미등정봉 정상에 첫 발자국을 새겼다. 자정에 캠프2를 떠나 15시간이 넘게 이어진 피 말리는 사투 끝에 등정을 이뤄냈다. 우리는 반쯤 실성한 얼굴로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자일 하나에 서로의 목숨을 지켜준 동료에 대한 고마움이 속에 벅차올랐고, 눈물이 터져 나왔다. 더 잘하지 못했다는 미안함, 마침내 이 여정이 끝나간다는 후련함이 뒤섞여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PK39 베이스캠프에서의 필자. 두 번의 정상 공격 때문인지 피부가 많이 상했다,
배낭에서 물병 하나를 꺼내는 것조차 버거울 만큼 육체의 한계에 다다라 있었지만, 항상 나의 베이스캠프가 되어준 부산학생산악연맹과 부산대학교 산악부의 깃발을 펄럭이며 이제야 웃을 수 있었다.
이것으로 나의 첫 히말라야 원정 등반이 끝났다. 산에 대한 동경만 가득했던 미성숙한 햇병아리 대학생이, 히말라야 6,000m대 두 개 봉우리의 정상을 밟기까지 정말 많은 이야기가 생겼다. 원정대를 지원할까 말까 하며 강의실과 히말라야 사이에서, 서성이던 시간들. 평범한 대학생의 삶과 산을 오르는 알피니스트 사이에서 끝없이 고민했다. 대체 왜 힘들고 위험할 것이 뻔한 히말라야에 가려고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 애썼던 게 생각이 난다.
결국 그 거창한 질문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떠나기 전에도, 심지어 두개의 정상을 밟은 지금 이 순간에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누군가 이유를 묻는다면, "그 해답을 직접 몸으로 경험하며 찾기 위해 산에 간다"고 웃으며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나의 도전을 마무리하는 완벽한 말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역시 이 말로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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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영원히 머물 수는 없다. 어차피 내려와야 한다. 그렇다면 왜 애써 올라가는가? 위에서는 아래를 알지만, 아래에서는 위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르네 도말의 소설 '마운트 아날로그'에서 나온 이 말처럼, 우리는 정상에 영원히 머물 수 없다. 필사적인 노력으로 정상에 오르지만, 언젠가 정상에서 내려와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해야 한다. 하지만 히말라야의 극한의 환경에서 동료들과 한계를 버텨내며 몸에 새긴 생생한 살아 있음의 감각만큼은 산에서 내려온 뒤에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취업준비를 하는 치열한 대학생의 일상을 마주해야 하겠지만, 히말라야에서의 기억은 앞으로 마주할 현실의 벽 앞에서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산에서 경험한 것들을 일상에 녹여내어 나의 현실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그 고생을 하면서도 기어코 다시 배낭을 메고 산으로 향하는 진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부산학생산악연맹 원정대 등반 기록
7.12 스카르두 - 탈레마을(3,500m) 카라반캠프(3,950m)
7.13 카라반캠프(3,950m) PK39 베이스캠프(4,600m)
7.14 늑대바위에 고정로프 설치
7.15 늑대바위 정상으로 장비수송, 데포
7.16 베이스캠프에서 대기
7.17 PK39 베이스캠프(4,600m) 캠프1(5,150m)
7.18 캠프1(5,150m) 캠프2(5,450m)
7.19 캠프2(5,450m) 정상(6,015m) - 캠프2(5,450m)
7.20 캠프2(5,450m)- 캠프1(5,150m) - PK39 베이스캠프(4,600m)
- 우리 원정대는 PK39를 세계 최초로 등정하고 도스트 피크Dost peak라고 이름 지었다. 도스트는 발티어로 '친구, 형제'를 뜻하는 말이다. 발티어Balti는 이곳 현지인들, 주로 파키스탄과 인도 접경의 카라코람·히말라야 지역에 사는 발티인Balti people들이 사용하는 언어다.
- GPS를 사용해 측정한 실제 정상의 고도는 6,015m였다.
- 원정대 명단
단장 하태웅(인제대88), 대장 조벽래(동아대88), 부대장 오세인(동아대04), 재학생 리더 윤성민(동의대21), 촬영 이창엽(동아대22), 행정 장효정(경성대23), 운행 나유진(부경대23), 의료 이재영(동아대23), 장비 안형준(한국해양대24), 기록 이수환(부산대25), 식량 송재우(동아대25), 장비 김성현(부산대25), 식량 심민정(동의대25)
- 코사르강(6,041m) 등정: 조벽래 오세인 윤성민 이창엽 나유진 안형준 이수환
- 도스트피크(PK39 6,015m) 등정: 조벽래 오세인 이창엽 장효정 이재영 안형준 이수환
않아 위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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